백야는 침잠한다.
W. 사라반트
-인류가 전부 사라진다면 그땐 누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서기 2100년, 현대 과학과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여전히 세계 어디선가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고 지금도 어딘가의 하늘에서는 적의 기지를 향해 폭약을 떨어트리고 있겠지만, 우리의 외관은 훨씬 깔끔하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기술을 하나 꼽자면 많은 사람들이 안드로이드 제작 기술을 언급합니다. 로봇이 상용화되기까지 인간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등 많은 토론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인간과 로봇의 공생은 성공적입니다. 인간의 뇌보다 저장 공간이 넓은 로봇은 비서나 자료실 관리자로, 인간의 관절과 근육보다 유연한 몸을 가진 로봇은 경비원으로 사용됩니다. 정치, 경제, 예술과 인문학 등에서는 아직 인간이 로봇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로봇은 인간을 위한 기술에 불과합니다. 저들은 로봇이 감히 넘볼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로봇은 빅데이터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 혼자선 사고를 확장하기 어려우니, 인간은 쉽게 그들을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우리의 기술은 로봇을 '적당히' 현명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갑작스러운 혹한기, 전세계적인 빙하기를 맞이하며 쇠락기에 접어듭니다. 남은 인간들은 지구의 지배자 타이틀을 빼앗긴 채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언젠가 남은 이들은 추위에 견디기 위해 선사 시대의 모습으로 퇴화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합니다. 로봇들은 추위에 이미 전원이 꺼진지 오래입니다.
탐사자들은 하나의 생존자 그룹을 구성 중입니다. 2~4인의 극소수 인원으로 구성된 탐사자들의 생존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음식도 쉼터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 숨을 내쉬어 입김이 얼어붙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오늘도 모두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탐사자들에게 낯선 손님이 찾아옵니다. 유명 로봇 제조 회사의 최신형 비서 로봇. 전력이 반 정도 남은 그는 자신이 본사로부터 시그널을 받았으며, 그 신호에 의하면 이곳 가까이에 생존자 캠프가 있다고 합니다. 굳이 그가 관절 이음매에 눈이 끼어가며 탐사자들을 찾아온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로봇 정보 통제의 결과, 비서 로봇인 그는 눈보라를 헤치는 데에 미숙합니다. 그는 탐사자들에게 동행을 요청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곳은 추위가 가득하고, 백야가 내려앉은 마을. 인간과 로봇이 섞인 탐사자들은 땅도 하늘도 새하얀 평야로 향합니다.